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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과 나

내가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삶의노트」를 읽어보면 전혜린이 자주 등장한다. 그 만큼 전혜린은 내 삶과 관계가 깊다.

내가 처음 전혜린을 알게 된 것은 20살 무렵이다. 어쩌면 19살에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2000년부터 일기를 「삶의노트」에 기록하고 있지만, 사실 내가 일기를 쓴 것은 18살 때부터였다. 그때의 일기장을 찾아보면 전혜린을 알았던 정확한 시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무렵에 누나가 전혜린 책 세 권을 샀다. 전혜린의 일기를 모은《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그녀의 에세이를 모은《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평론집《아! 전혜린,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랑하며 죽어가리》였다. 그 책들을 나한테 보여주면서 전혜린이 어떤 여자인지 설명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누나의 얘기만 듣고서 전혜린에게 호감을 가졌다. 누나도 전혜린을 무척 좋아했지만 그 책들은 지금까지 내 책장에 늘 꽂혀서 읽혀졌다. 그때 그 세 권 중에서 두 권이 아직 나에게 있다.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는 누군가에게 준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책을 주었다는 것은 정말 나와 가까운 사이였다는 것인데.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혜린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끝없는 지식욕, 지칠 줄 모르는 인식에의 갈망, 탁월하고 놀라운 언어력, 그녀의 서독으로의 유학과 뮌헨 슈바빙을 향한 동경, 먼 이국에서의 고독과 치열한 열정, 뮌헨 대학 주변 조그마한 방에서의 생활과 영국공원에서의 추억, 그녀가 글에 담은 유럽에의 동경 등 어느 것 하나 매료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 무척 행복했었다. 때로는 그녀를 닮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 앞에서는 폼도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정말 천제적인 여자였다. 나는 그 나이에 그런 삶도 살지 못했고, 그런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런 능력도 되지 못했다. 전혜린과 같은 나이 때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녀를 통해서 대리만족하거나 동경하거나 꿈꾸는 것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도달하지 못하기에 그녀에게 더욱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2001년도에 유럽배낭여행을 혼자 가게 되었다. 그 전부터 전혜린의 행적을 좇아서 다니고 싶었다. 그녀의 글에 등장하는 곳에 방문해서 그녀의 자취를 느껴보고 싶었다. 막상 뮌헨 슈바빙에 도착해서는 오래도록 머물지 못했다. 오전에 뮌헨에 도착해서 하루 정도 바쁘게 돌아다니다가 다음 날 퓌센으로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는 무척 기뻤다. 다음에 또 다시 방문하면 되니까.

그녀의 책에서 묘사된 뮌헨대학, 영국공원, 레오폴드가 등을 거닐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곳은 변하지 않은 듯했다. 그녀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때는 하루 밖에 둘러보지 못했지만, 다음에 방문하게 되면 며칠 혹은 일주일 정도 머무르며 지내볼 생각이다.

전혜린은 여전히 나에게는 친구같은 여자이다.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전혜린은 여전히 그녀로 남을 것 같다.

왼쪽 건물에서부터 넓게 뮌헨대학이 있고, 보이지 않지만 오른쪽에 영국공원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저 멀리 세 개의 문이 있는 개선문이 보인다. 그기에서부터 북쪽으로 레오폴드거리가 있다.

(영국공원. 이 공원은 아주 넓다. 젊은 날의 내 모습^^)

(레오폴드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