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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부처님은 언어문자를 달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누구든지 그 손가락 끝을 따라 허공에 뜬 달을 보아야 할 터인데, 바보는 달은 쳐다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달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천 년 만 년 가도 달은 영원히 보지 못하고 맙니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말씀하신 것은 달 가리키는 손가락을 펴 보이신 것이니 그 손가락 빨고 물고 해보았자 결국 달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손가락 저편에 있는 달을 바로 보아야 합니다.

- 《자기를 속이지 말라》p.238, 정찬주 지음

불교에서는 경전을 숭배하지 않는다. 불자들이 개인적으로 불경을 목숨처럼 여기는 것은 개인적인 사정이고, 공식적으로는 어떠한 경전도 신성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들은 오직 사람 안에 있는 불성만을 섬기고 따른다. 그 불성만이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공부해도 깨닫지 못하면 불성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경전의 지식을 쌓아서 자신을 돋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경전은 불성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다. 그것은 깨닫기 위한 도구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기독교에서 성경도 이와 같다. 성경의 말씀은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도구이지, 그 자체가 신성시되어 숭배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일부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교단은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여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것이라 여기며 신성시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진정으로 거듭나는 건 도외시하고 성경 공부에 더 전념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성경이나 종교 지식은 끝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지식만 쌓일 뿐 깨어나지는 못한다. 그 지식도 영원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옛것은 잊혀지고 새것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어릴 때 나를 비추어보면, 나도 책을 좋아해서 종교 서적을 많이 읽었다. 기독교 서적은 20살을 기점으로 엄청나게 읽었었다. 비록 신학교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조금 어렵기는 했어도 신학 서적도 가리지 않고 읽었다. 25살 무렵에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4권)도 구입해서 한 달 동안 몇 차례 읽고 또 읽으면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무척 유행했었는데 관련 서적을 대량으로 구입해서 읽고, 세미나 참석도 하며 나름대로 열정적이었다. 그런데 30대에 들어서니 이전에 공부했던 것들이 과거의 지식 외에는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때를 되돌아보니 그 당시 알았던 지식은 지금은 거의 생명력을 잃어버려 별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영성은 지식만으로는 계발되지 않았다. 영성의 성장은 기도였다. 그런데 나는 대화체 기도나 침묵기도를 선호해서 묵상 기도를 주로 많이 했다. 그런데 그 기도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단계까지 이끌지 못했다. 기독교에서 하는 모든 기도는 하나님을 대상으로 두고 관계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성령의 거듭남을 얻기 힘들다. 물론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은사는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은사는 나중에 다 사라지는 것들이니 큰 의미는 없다. 성령을 체득하는 것만이 영원하다.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령으로 거듭나기가 참 어렵다. 성령으로 거듭나려면 지식을 모두 내려놓아야 가능하다. 지식이 있으면 마음 속으로 진리를 판가름하기 때문에 성령의 임재를 방해 받는다. 지식의 사용은 자아가 한다. 성령이 자리하려면 자아가 죽어야 가능한데, 마음 속에서 지식을 따지고 있으니 성령이 올 기회를 갖지 못한다. 때문에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지식으로 무장만 했지 성령을 알지 못한다. 나도 성령을 체득하지 못한 것이 어쩌면 지식을 더 선호해서인지도 모른다. 본래 생각이 많고 철학적으로 따지기를 좋아했고 많이 아는 것을 선호했다. 그게 오히려 성령을 체득하는데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라. 신학교 교수일수록 살아있는 성령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오히려 목사들 앞에서는 순종적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영성은 교수보다는 목사들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목사라고 해서 성령을 체득했다고는 볼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기독교의 교리 자체가 바울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 바, 예수님 방식의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한 목사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그것은 지난 날 나 자신을 봐도 그렇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지낸 주변 기독교인들을 봐도 그렇고, 인터넷을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여러 현상을 봐도 그런 확신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