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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진리를 위해서 있지, 종교를 위해서 진리가 있는 건 아니다

'영원한 진리'라고 하면 막연하지요. 내가 불교인이니 그것은 불교밖에 없는가, 하고 혹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견문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더러 책도 읽어보았는데, 불교가 가장 수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불교를 그대로 믿고 있고 앞으로도 이렇게 살 것 입니다. 만약에 앞으로라도 불교 이상의 진리가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이 옷(장삼)을 벗어버리겠습니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서 진리를 택한 것이 아닙니다.

- 《자기를 속이지 말라》p.205, 정찬주 지음

위 글은 성철 스님의 말이다. 스님은 불교가 그나마 가장 뛰어난 종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교보다 더 나은 종교가 있다면 언제든지 불교를 떠나겠다는 말도 한다. 나는 이 말이 참 감동적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해 줄 종교를 찾는다. 좀 더 나은 사람은 진리를 찾기 위해서 종교를 선택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진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종교가 진리 자리에 앉게 된다. 다른 종교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보고 자란 기독교는 그런 경향이 강했다. 교회 출석을 잘 해야 신앙심 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 받았다.

기독교는 교단의 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단번에 종교 재판에 걸려 이단으로 낙인이 찍히거나 제명 당한다. 그렇게 쫓겨난 목사나 교수들이 상당하다. 동성애 인권을 존중해도 교수직을 걸어야 하고 목사 자격을 걸어야 한다. 지금이 유대 시대라면 불륜을 저지른 여자를 살린 예수님도 쫓겨났을 것이다.

이슬람 만큼은 아니겠지만 기독교는 상당히 폐쇄적인 종교 집단이다. 새물결플러스 대표인 김요한 목사도 자신이 펴낸 책 《지렁이의 기도》때문에 몇 차례 이단 신고를 당해서 곤혹을 치뤘고, 그는 요즘 장로교의 세습과 목사들의 여러 부정을 보면서 개신교를 떠나야 하나 하는 자괴감 마처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도 진리를 기독교 안에서만 찾으려 했다. 그런데 진리를 찾는 방법을 별도로 알지 못하니 기독교적 전통 안에서, 기독교의 지식을 통해서 배우고 학습하며 진리를 찾았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예배하고, 성경 지식을 쌓고, 종교 서적을 읽어서 지식이 더 풍부하면 진리를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진리가 체감되지 않았다. 물론 하나님이 진리 그 자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을 지성적·감성적으로만 알았지 진리 그 자체로는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진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될 때 체득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기독교에서 그런 생각은 신비주의나 뉴에이지로 몰매를 맞는 것이어서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짓이었다. 그러니 기독교적 교리에 묶여서 한 치도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성철 스님은 견성 이후에 참 많은 공부를 했던 것으로 안다. 여러 종교 뿐만 아니라 언어와 과학 지식까지도 훤했다. 그는 불교 지식을 얻기 위해서 일본어로 불교 서적을 구해서 읽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든 노력이 진리를 구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다른 종교의 서적도 많이 읽은 듯했다. 그는 설법을 하면서 성경의 말씀도 곧잘 활용하곤 했다. 불교에서는 다른 종교의 글도 잘 이용하는 편이다. 기독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짓이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나도 여러 종교의 책을 읽었다. 불교와 인도 성자의 책을 많이 읽게 되었다. 성리학도 공부했고, 동학의 최제우의 글과 경전도 읽었다. 신비주의와 종교개혁 이전의 기독교 관련 책도 읽었다. 기독교의 책은 어릴 때부터 워낙 많이 읽어서 굳이 따로 읽을 필요는 없었다. 대신에 다른 종교의 책을 많이 읽었다. 내 생각도 성철 스님과 비슷하다. 아직까지는 진리를 알아가는데 불교 만큼 탁월한 종교는 없는 것 같다. 그 외 인도 성자들의 글도 도움이 많이 된다. 에크하르트와 같은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의 글도 도움이 되지만 불교 만큼은 아니다. 불교는 방법론까지 체계적으로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무척 과학적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굳이 종교를 따지지 않고 자기 종교를 지키면서도 누구라도 실행할 수 있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서 무척 개방적이다. 

예전에 나는 기독교 안에서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했었다. 지금은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여러 종교의 가르침을 접해보니 종교마다 장단점이 있었다. 나는 좋은 것만 가려서 나한테 적용하고 있다. 자기 종교에 갖힌 사람은 진리로 향하는 길까지 닫아 놓아서 자기가 가는 길이 직선인지, 곡선인지, 되돌아가는지, 전혀 잘못가고 있는지 구분하지를 못한다. 하지만 열린 종교관을 가진 사람은 아주 폭 넓게 길을 살피면서 최선의 길을 간다. 어떤 종교를 믿든지 그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그 종교가 반드시 진리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또한 어떤 종교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진리의 길은 개인전이다. 자기 대신에 다른 이가 이끌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특히나 목사의 말이면 하나님 말처럼 따르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한다. 요즘 양의 탈을 쓴 늑대 목사가 너무 많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자들을 좇다가는 함께 지옥불에 떨어진다. 

기독교 신앙 생활을 하면서 놀란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기독교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당연히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저들은 스스로 노아 방주에 탔으니 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안에서는 그런 생각이 당연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니 다른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물론 자신은 아니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십보 백보 차이였다. 깨달음 종교관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거의 다 그런 분류라고 여겨진다.

종교는 진리로 나아가는 수단이며 하나의 길이다. 종교에 엮이지 말고 종교를 활용해야 한다. 기성 종교도 문제가 많지만, 신천지 같은 종교는 정말 심각하다. 사람을 종교에 종속시켜서 죽음으로 몰고가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