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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분류: 종교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무용
2019년 08월 25일

천국은 천당이 아니다. 천국과 천당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천국은 무형의 조직이고 천당은 장소(공간)개념을 갖는 유형의 실체이다. 예수는 천국을 말했을 뿐 천당을 말한 적이 없다. 신약성서 전체를 두 눈을 비비고 잘 바라보라! 어느 한 귀퉁이에도 천당이라는 말은 없다. 천국이란 하늘구름 위에 붕 떠있는 어느 곳(topos)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은 "하나님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나라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영어로 "Kingdom of God(Heaven)"이 아니라 "Reign of God"이다. "나라"에 해당하는 희랍어 "바실레이아"는 예수의 선포 속에서는 장소적·유형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비장소적·무형적 개념, 즉 "지배"라는 의미맥락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선포한 것은 로마의 지배나 율법의 지배나 바리새인·대제사장의 지배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적·무매개적 지배였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지배"(the Reign of God on Earth)였다.

-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1》p.258, 도올 김용옥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도올 선생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대체로 요즘은 하나님 나라가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이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지배'라는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지배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생긴다. 어떤 것이 이 땅 위에서의 하나님의 지배일까? 그리고 그런 지배가 이루어지는 곳이면 하나님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지배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힘을 갖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할 것도 같다.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경 말씀에 기록된 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어떤 이는 교회나 신자가 많아지면 그것도 하나님의 지배력이 높아지는 것 아니겠냐고 할 것 같다.

아래는 어떤 이의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라는 논문이다. 그의 글에서 일반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이 모두 있어서 이 글을 갖고 몇 가지 말해 본다. 아래 글은 저자를 비판한다기 보다는 기독교적 교리를 비판한다고 보면 된다. 저자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생각이 그러하고, 나도 예전에 그러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늘과 이 땅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상 속에서, 특히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다.

출처: https://www.theosnlogos.com/292 [theos & logos]
즉,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늘과 이 땅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상 속에서, 특히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다.

출처: https://www.theosnlogos.com/292 [theos & logos]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으로써 하나님께서 하늘과 이 땅을 직접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상 속에서, 특히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이면서도 궁극적인 소망이 되고 있다.

…… 

하지만 신약성경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모양으로 임하는지에 대해 매우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다. 예수님도 다양한 사역과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만큼 신약성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특정한 단어로 설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로마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며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각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실체로까지 기록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여되는 유업이기도 하다.

하나님 나라는 현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영적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의 재림 때 얻을 수 있는 것으로써 ‘이미’라는 현재성과 ‘아직’이라는 미래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래드는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실체이면서(마 12:28), 미래적 축복(고전 15:50), 다시 태어난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요 3:3) 영적인 내적 축복이면서(롬 14:17) 또한 이 세상 나라의 통치(계 11:15)와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이 실제로 들어갈 수 있는 현재적 영역이면서 나중에 들어갈 수 있는 미래적 영역(마 8:11), 믿는 자에게 상속되는 미래적 축복의 나라이면서(눅 12:32), 현재에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나라(막 10:15)라고 강조한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가" 중에서.
이 논문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을 잘 정리한 것 같다.
논문 원문 : https://www.theosnlogos.com/292

 

위 논문의 내용을 보면 요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의 의미는 모두 담겨 있다. 저자가 안 보여서 누가 쓴 글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가져왔다. 하나님 나라는 개인의 영적 상태이고 현재적이면서 미래완료적이다. 이미 이 땅에 왔지만 종말에 완성된다는 의미이다. 이 종말이라는 개념은 내가 죽은 후 어느 날을 가리킨다. 아마도 종말에 죽은 육체가 새 몸으로 부활하여서 재림하는 예수를 맞아 그가 통치하는 나라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이 단지 생각 속에서만 있을 수 있다는 건 왜 인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과연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 나라를 말한 것일까?

위 논문의 저자의 말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의미를 애매하게 말하고 있다. 거의 다 비유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명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성경의 이곳저곳을 뒤지며 그 의미를 탐색한다. 모든 신학자나 목사가 그런 짓을 한다. 그것은 결국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주 적나라하게 말해 주고 있다. 그 스스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면 자기 경험을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직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알지 못하니 성경 구절만 나열하고, 권위있는 학자의 글을 인용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는 게 아니다. 살아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글이나 생각으로 그려진 관념은 하나님 나라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말씀을 외쳤을 때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있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회개하라'는 의미는 원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마음을 돌이켜서 회심하라', '의식을 바꾸어라' 등의 의미가 있다. 마음을 어디로 되돌리라는 것인가? 당연히 태초의 아담과 하와가 가졌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 되돌리라는 것이다. 즉 죄로 물든지 않은 상태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며,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한다며 열심이라면 그가 정말 하나님 나라를 알고 그러는 걸까? 절대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의 지배가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려면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마음을 돌이켜 순수했던 그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아로 물든 마음을 성령으로 씻으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같은 것이다. 이것은 믿음이나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이다. 이것은 의식의 완전한 변화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단지 믿음만으로는 절대 이를 수 없는 경지이다. 믿음은 변화하기 위한 마음가짐이지 실질적인 변화까지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하나같이 믿음을 갖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위 논문 저자처럼 개념적으로만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있다면 늘 평화가 가득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하나님만 찾으며 위로를 받는다. 진정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불안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다.

논문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의 해석을 그는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각자가 경험할 수 있는 영적 실체로까지 기록하고 있다.'라고만 한다. 단지 서술하는 것을 봐서 저자는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살지 않기 때문에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 같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격을 너무나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삶, 성령으로서의 삶이 하나님 나라이다. 그 삶은 평강과 희락이 넘친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내가 죽고 성령이 되는 실체적 변화를 동반한다. 세상을 성령의 시각으로 보게 된다. 세상적 삶이 아무리 요동쳐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잔잔하다. 그러니 평화가 넘쳐나는 것이다. 이것이 실감나지 않고 개념으로만 이해된다면 어찌 하나님 나라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이라고 한 것은 감정적, 정서적 편안함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감각에서 오는 기쁨이나 안락은 일시적이며 변한다. 어떤 편안한 상태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도 상황이 바뀌면 편안함이 고통으로 바뀐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평화는 늘 한결같고 사라지지 않는다. 텅 비었지만 고요하고 잔잔하며 충만하다. 그것은 근원으로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평화이며, 내가 어떤 것을 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인 것은 어떤 조건이 주어져야만 편안함이 발생하고 조건이 사라지면 평화도 깨어진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의 그것은 그냥 그 자체가 평안이다. 세상적인 조건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무리 풍랑이 불어도 바다 속은 잔잔한 것처럼 평안하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적 갈증도 생기지 않는다. 늘 하나님으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험되는 세계이다. 단지 생각이나 관념으로 이해되고 있다면 아직 하나님 나라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삶에서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따르려고 하고, 선행을 하고,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게 아니다. 이미 이 세계는 하나님의 통치대로 잘 흘러가고 있다. 다만 인간적 시각으로 볼 때 그것을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영의 눈이 뜨여야 하나님의 통치가 보인다. 눈이 뜨이지 않은 사람에게는 온통 인간의 무질서만 보인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삶 자체를 하나님의 뜻 그대로 살게 된다. 무엇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거슬리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하나님의 지배가 형성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은 인간의 제도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실현된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임하는 게 별 게 아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삶 자체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해 달라고 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결국 선교나 선행 또는 세상의 정의같은 것 외에는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것들이다. 물론 차선으로라도 그런 것들이 있으면 좋다. 하지만 예수님은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셨지 부수적인 것들을 원하지 않으셨다. 외형적인 변화는 언제든지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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