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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예찬

어제 늦은 오후 습지길을 다녀왔다. 습지길은 요즘 완전히 여름이다. 길마다 숲이 우거져서 아늑한 느낌마저 든다. 안쪽 징검다리까지 이르렀을 때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가지고 다니던 약을 먹었지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집까지 한참 걸릴텐데 어떻하나 걱정도 되었지만, 만약 이곳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걸었다. 멀리 여행을 떠나면 언제든지 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때를 대비해서 적응 훈련을 해야 한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혼자서 죽든지 살든지 견뎌내어야 한다. 아니면 육신의 문제를 초월해야 한다. 나는 초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죽어도 몸이 죽는 것이지 영이 죽는 것은 아니다. 죽을 각오를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집에 가까이 왔을 때 몸이 안정이 되었다. 최근 몇 달 동안 가장 안 좋은 상태를 경험했다. 오늘은 어디 멀리 나가지 않고 조용히 보낼 생각이다. 최근에 너무 많이 걸어다녀서 몸도 휴식이 필요하다. 저녁에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는 정도로 지낼 것이다.

김남희가 지은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2 - 스페인 산티아고 편》을 읽고 있다. 그녀는 참 많은 곳을 여행했다. 작고 가냘픈 몸에 어찌 그리 여행을 많이 다니는지 존경스럽다. 이 책은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하여 세 번째 읽는 책이다. 하페 케트킬링이 지은《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도 대기 중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걷기예찬》도 읽는 중이다. 조금 전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지은 《나는 걷는다》2~4권도 주문했다. 1권은 아직 중고서적에 나오지 않아서 기다리는 중이다. 하정우의 걷기 책도 나오면 주문할 생각이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 걷는 걸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왠만하면 걸어서 다닌다. 일을 볼 때에도 목적지가 두 시간 정도의 거리이면 어디든 걸어서 다녀온다. 이제는 걷는 게 너무 익숙해졌다. 걸어도 지겹지 않고 순간순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너무 생생하고 활기차다. 마음같아서는 전국을 다 돌아다니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어서 가까운 곳을 열심히 걷는다. 하지만 범위를 점점 넓혀볼 생각이다. 지금은 유성을 중심으로 걷지만 대전시 안 가 본 곳을 찾아서 걸어보고, 공주와 계룡산을 중심으로 그 주변도 걸어볼 만하다.

걷는 게 건강에도 좋지만 나에게는 명상 그 자체이다. 예전에는 걷는 게 조금 힘들었다. 생각이 계속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생각에 몰입하다보면 주변 경치도 잘 못 본다. 그게 오래 지속되면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생각은 과거의 것을 재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겨움을 유발하고 걷는 것을 고통스럽게 만든다.  

반면에 지금은 걷는 게 너무너무 신선하다.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생각이 나더라도 생각에 빠지지 않는다. 생각과 동일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나타나면 그냥 생각을 지켜본다. 그러면 생각은 안개처럼 서서히 사라진다. 눈 앞의 풍경은 한걸음 한걸음 옮길 때마다 새롭게 바뀐다. 그 바뀜과 새로움을 즐긴다. 그러면 지겨울 틈이 없다. 내가 세상 속에서 걷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내 의식 안에서 계속 바뀌어 간다. 마치 끊기지 않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생각에 빠지지 않으니 머리도 맑고 상쾌하다. 쉽게 지치지도 않는다. 에너지 낭비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