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카미노 데 산티아고로 도보 여행을 떠나게 된 것도 '걷기'라는 행위가 가진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나는 꿈꾸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걷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것, 화려한 도시 문명이 아닌 수더분한 자연 속에서 오직 걷는 것에만 집중하는 내 모습을 꿈꾸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나'를 되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다. 화려한 조명도, 팬들의 박수갈채도, 최첨단 기계음이 뿜어내는 매끄러운 음향이 사라진 '그곳'에서 나는 마음껏 걸을 수 있었다. 나를 둘러싼 사방이 온통 산과 들인 그곳에서 내 귀는 한층 맑아졌다. 그동안 도시의 소음으로 듣지 못했던 땅을 밟는 내 발소리와 바람이 귓가를 살며시 스치는 소리, 고요한 산 중턱에서 쉬는 동안 쿵덕쿵덕 뛰던 내 심장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나에게 이 고요한 걷기가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 그렇게 나는 나와 함께 걸었다.
- 《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왜 가셨어요?》p.139~140, 박기영 지음.
박기영씨의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다. 새벽부터 읽기 시작해서 늦은 오후가 되어가는 지금도 계속 붙들고 있다. 이제 절반 정도 읽었다. 그녀는 부르고스를 지나 레온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전체에서 중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누구나 걷기 여행을 하다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굳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따질 필요가 없다.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하지만 생각 속의 내용은 비슷한 부분이 있다. 과거를 떠올리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 두 가지가 대부분이다.
그녀의 글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와 함께 걸었다"
앞의 '나'는 일상에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그녀 자신이고, 뒤의 '나'는 여행하는 그 순간의 현존으로서의 자기 자신이다. 여행하면서 이 깊이까지 들어가는 사람은 드문데 그녀의 글에서 그것이 느껴진다. 그녀는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신을 찾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은 거의 다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의 글을 잘 읽어보면 걷는 동안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게 보인다. 즉 자기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내면으로 들어오는 때가 있었던 것이다. 잠깐이지만 박기영씨는 자기 자신과 일면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심층적 단계까지는 들어가지 못한 것 같다. 다만 그 경계선을 잠깐 스치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하여튼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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