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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낳은 내가 나다

어머니가 낳은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낳은 내가 나다. 무한히 펼쳐진 이 세상이 여기가 아니다. 내가 선 땅이 여기다. 시간도 흘러가는 것은 내 시간이 아니다. 내가 깬 순간이 내 시간이다 내가 땐 시간이 내 시간이요, 내가 선 자리가 내 입장이요, 내가 낳은 나만이 나다. 깬 나, 새로 태어난 나만이 나다. 시간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순간은 느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다. 공간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입장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 낳은 나는 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죽지 않는 나를 가질 때 언제가 죽을 수 있고, 없어지지 않는 나를 가질 때 어디나 갈 수 있고, 죽지 않는 나를 가질 때 누구나 만날 수 있다. 나는 언제나요, 어디나요, 누구나다. 언제나 있는 나요, 어디나 있는 나요, 누군 있는 나다. '언제'가 있는 동안 나도 있고, '어디'가 있는 동안 나도 있고, '누구'가 있는 동안 나도 있다.

나는 영원하고 무한하고 신성하다. 세상에 나를 이길 자가 없고 나를 누를 자가 없고 나를 무시할 자가 없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존경하고 나를 두려워하는 자만이 참 나를 살 수가 있다. 나는 나다. 언제나 나요, 어디나 나요, 누구나 나다. 나를 알고 나를 찾고 내가 되어 나를 사는 자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들은 이미 천국에 사는 사람이요, 하나님과 같이 사는 사람이요, 영원을 사는 사람이다. 태초에 내가 있었다. 내가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 내가 곧 하나님이다. 이것이 요한의 외침이었다.

- 《생각없는 생각》p.13~14, 김흥호 지음

이 책의 첫 번째 글을 읽는 순간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쓸 수가 있을까 싶었다. 첫 문장부터 가슴에서 감동이 휘몰아쳤다. '어머니가 낳은 나는 내가 아니다. 내가 낳은 내가 나다'. 문득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존재를 들은 문장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자신을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나다'라고 하셨다. 김흥호 선생은 '내가 낳은 내가 나다'라고 한다. 두 문장 너무 아름답고 존재론적이다.

'내가 낳은 나'는 성령을 말한다. 성령이 내 안에서 태어날 때 그것이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말이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성령을 찾고 있다면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즉 참나는 아직 존재 아래 가라앉아 숨을 쉬고 있지 않은 것이다.

김흥호 선생은 다석 류영모 선생의 제자이다.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오나 보다. 그의 책은 모두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