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서 갑천 습지길을 향해 걸었다. 유성천을 따라서 걷는데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 큰 비는 아니어서 그냥 맞으며 걸었다. 빗방울이 계속 굵어졌다. 하는 수 없이 유성 홈플러스 야외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잠시 비 구경을 했다. 일요일이어서 홈플러스는 휴점 상태였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하늘을 보니 종일 내릴 비는 아닌 듯했다. 비가 조금 약해지자 다시 걷기 시작했다.
갑천 둘레길에 들어섰는데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날이 맑았으면 오늘 정말 사람이 많았을 것 같은데 잿빛 하늘 아래 나 혼자 벚꽃 구경하며 걸었다. 한참 비 맞으며 걸었더니 몸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비는 더 심해지지는 않았지만 옷을 적시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기가 올까 싶어서 우산을 꺼내어 썼다.
습지길 입구에 들어서니 내 기운이 살아났다. 갑천 습지길은 내 순례길이다. 스페인에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있다면 이곳은 나의 순례길이다. 이곳 숲은 내 영혼을 깨운다. 순례길 이름을 하나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좋은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습지길 안쪽 징검다리 있는 곳까지 왔다. 그기가 내 여정의 종점이면서 영혼이 쉼을 갖는 장소이다. 보통 그곳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되돌아가곤 한다. 오늘도 그곳에서 한 시간 동안 나무와 놀았다. 그곳에는 몇 개의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새잎이 돋아나서 생명의 기운이 넘쳤다. 나는 마음을 비운 체 나무를 쳐다봤다. 단지 살아 숨쉬는 나무의 기운을 느꼈다. 나무와 교감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나무가 되어갔다. 나는 가지가 되어 바람에 흔들렸고, 내리는 비에 젖어 더 촉촉해졌다. 착시 현상 때문인지 나무 이외에 사방이 흐릿하게 빛나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무를 쳐다보면 그런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옆에 흐르는 물소리도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허공을 맴돌았다. 나무되기는 참 황홀했다. 아마도 마음이 비워져서 그런 것 같다.
몸이 추워져서 보온병에 담아 간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천상의 맛이었다. 작년 가을에도 건너편 갈대숲 사이에서 비를 맞으며 커피를 마신 기억이 난다. 그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잔에 빗물이 다 들어왔지만 그 흥분에 취해서 그냥 마셨다. 그때도 오늘처럼 나 혼자였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없이 오로지 자연 속의 나 혼자였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습지길을 되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다리가 조금 아프기 시작했지만 마음이 가벼우니 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갑천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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