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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삶
비 오는 날 도솔산에서
어제 대전에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우산을 쓰고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갑천 습지길과 도솔산으로 향했다. 비가 살며시 내리는 날은 맨발걷기 하는데 최상의 조건이다. 비가 오기 때문에 사람도 없고 오로지 나 혼자 조용하게 산을 누릴 수 있다. 날도 많이 풀려서 축축한 땅을 밟아도 발이 시렵지 않다. 보통 비오는 날에는 맨발걷기 하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비가 올 때 맨발걷기를 해야 더 좋은데도 말이다.갑천이 많이 불어서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었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서 습지길로 들어섰다. 역시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습지길 중간 지점에서 방향을 꺽어서 도솔산으로 향했다. 떨어지는 비로 인해서 메마른 낙엽에 상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조금 가파른 길을 올라도 전혀 숨이 차지 않았다. 맨발을 통해서 산소 공급이 잘 되어서 그렇다. 물론 평상시에도 맨발로 걸으면 좋지만 비오는 날에는 효과가 더 좋다. 
도솔산 행글라이더 봉우리에서
평상시에는 도솔산에 운동하로 오는 사람이 좀 있다. 가끔 맨발로 걷는 사람도 나타난다. 하지만 어제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탁 트인 행글라이더 봉우리 벤치에 앉아서 산 아래 안개에 덮힌 경치를 바라보면서 나 홀로 신선이 된 양 기분을 즐겼다. 가져온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빗소리에 심취했다. 비가 내리는 날 맨발로 산을 타는 미친 놈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몸도 마음도 좋은 것을 …….  비오는 날 도솔정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중이다.
도솔정이 보여서 발걸음을 멈추고 들어갔다. 매일 그냥 지나쳤는데 잠시 쉬고 싶어졌다. 걸을 때에는 몸에 피가 돌아서 몰랐는데 잠시 쉬고 있으니 추워지기 시작했다. 보온병을 꺼내어 다시 차를 마셨다. 갑자기 고독감이 몰려왔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과 주변의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정서적으로 변했던 것 같다. 마음에서 노래도 흘러나왔다. 이은하의 “봄비”였다. “봄비 속에 떠나온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 날을, 그때 그날을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마음 속에서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와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왕 노래가 떠오르니 그냥 노래를 따라서 불렀다. 산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비와 함께 노래에 취했다. 봄비 속에서 “봄비”를 부르니 좋았다. 어릴 때부터 20대까지 늘 짝사랑만 했던 나는 가슴앓이를 자주 했다. 그것 못지 않게 나를 좋아했던 여자들을 가슴앓이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그때의 내 사랑은 늘 비껴가기만 했다. 교제를 못해 봤으니 이별도 없었다. 하지만 가슴앓이를 많이 해서 마음 한켠에 그 자국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게 남은 자국을 보면서 내가 남긴 어느 여자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다. 많이 아팠겠구나 싶었다. 30살에 대전에 오면서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내게 인연의 끈을 맺어주지 못했다. 처음으로 만난 여자는 내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 할 운명을 맞았고, 두 번째로 만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는 결혼 할 뻔도 했지만 결국 서로 지향하는 눈이 달라서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 후로도 잠깐 스쳐지나가듯이 몇 명 더 만나봤지만 짧은 인연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몇 번 그런 만남이 이어지고 내 건강도 나빠지면서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38살 때부터 결혼을 마음에서 지우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빈틈을 보였더니 그렇게 옛 추억이 떠올랐다. 노래 속에서 그는 봄비 맞으며 돌아왔지만 내게는 다시 돌아올 여자가 없다. 내가 돌아갈 여자도 없다. 그냥 옛추억만 남았다. 하지만 혼자인 이 상태가 그리 싫지도 않다. 혼자이니 마음껏 옛날 일을 그리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와 결혼을 했다면 얼마나 눈치가 보이고 미안했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자유롭고 신이 나기도 한다. 늘 혼자 살아왔지만 앞으로도 더 혼자 사는 법을 배우려고 한다. 책도 더 많이 읽고, 미적 감각도 키우고, 피아노도 치고, 여러 언어도 배우면서 더 확장된 삶을 살아보려 한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장기 해외 여행도 할 생각이다. 물론 깨달음 공부도 계속 한다. 깨달음 공부 없이 다른 많은 것들을 하게 되면 군중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깨달음 공부가 된 상태에서 확장된 삶을 살면 그때의 삶은 정말 풍요로와진다. 내면적으로 꽉 채워지면서 한층 더 깊어진다고 할까. 내면이 빈곤하면 아무리 밖으로 넗혀도 공허감은 벗어나지 못한다. 그때 그 사람은 그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더 노예처럼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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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2000년~Today 김무용(Kim Moo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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