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삶의노트 > 삶의노트

과학(3) 교육(3) 글모음(59) 깨달음(358) 생각(439) 시사(104) 여행(97) 역사(1) 영성(281) 영화  (7) 예술·미술(35) 일상·삶(503) 종교(571) 철학(5)

이 순간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순식(瞬息)이란 글자 그대로 눈 한 번 깜짝하는동안, 또는 숨 한번 쉬는 동안을 뜻하는 순간이요 찰나다. 시간은 순간의 연속이다. 사람은 이 순간에 시공의 상대계를 초월하여 절대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이것을 깨달음이라 하며 돈오(頓悟)라 한다.

- 《다석 류영모 명상록》 p.33, 박영모 옮기고 풀이

어제 내가 영원의 한 점에서 시공간을 바라봤던 경험이 바로 위의 글과 일치한다. 물론 나는 어제 처음으로 깨달은 게 아니다. 내 안에서 본성, 즉 하나님은 5년 전부터 자각하고 있다. 어제는 평상시와 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어제 남긴 글에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아서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다른 사람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체의식(순수의식)으로 갑천 습지길과 도솔산을 걷고 있었다. 그곳에 가면 늘 전체의식으로 깨달음 공부를 한다. 전체의식으로 있으면 눈앞의 사물과 소리는 분별이 없어진다. 보이는 모든 것을 통으로 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물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무, 풀, 돌, 갑천, 갈대, 물오리, 고라니, 새 등을 보지만 그것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어떤 생각으로도 연결시키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본다. 그러면 나무가 보이지만 나무라는 생각이 없다. 새를 보지만 새라는 생각이 없다. 그냥 전체 속에서 무엇이다. 새소리가 들려도 새소리라는 생각이 없다. 그냥 전체 속에서 들려오는 어떤 소리일 뿐이다. 그런 상태에서 모든 변화만 인식한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면 갈대라는 생각없이, 바람에 흔들린다는 생각없이 길쭉하고 털이 난 마른 식물의 흔들림 그 자체만 알아차린다. 사람이 지나가면 사람이라는 생각없이 그냥 지나감만 의식한다. 새소리가 들리면 새소리라는 생각없이 그냥 소리만 듣는다. 보이는 것은 그냥 보고 들리는 것은 그냥 듣는다. 내가 보고 듣는다는 생각도 없다. 저절로 보이고 들린다. 나는 내 몸을 온통 내 안의 하나님께 맡긴 상태로 걷는다. 하나님이 보이고 들려주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계속 걷다보니 눈앞의 사물은 계속해서 내 발걸음의 보폭에 맞추어서 뒤로 밀려 사라졌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눈앞은 계속 변화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변화를 지켜보는 하나님도 함께 느끼기 때문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함께 자각되었다. 나는 매일 그렇게 회광반조 상태로 걷는다.

어제는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하나의 깨우침이 발생했다. 변하지 않는 의식 상태에서 변하는 현상을 경험하다보니 그 변하지 않는 의식 상태가 영원의 한 점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그 한 점에서 눈앞의 모든 변하는 것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영원의 한 점이 바로 찰나의 순간이었다. 나는 단지 변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변함이 없은 영원의 한 점, 측 찰나의 정점에서 변화를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에는 변하지 않은 의식이 좀 넓고 평평한 느낌이었다면 어제는 찰나의 한 점이었다. 그 한 점에서 생생한 변화가 목격되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변하지 않는 것(하나님)도 한 점에서 생생하게 자각되면서 변하는 것(세상)도 보이니 이게 뭔가 싶었다.

우리가 영원을 목격할 수 있는 시점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찰나 속에서이다. 전에도 지금 이 순간을 말해왔지만 그때는 같은 순간이더라도 계속 연속되는 느낌이 있어서 어제처럼 완벽한 찰나의 영원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는 그 찰나의 영원성과 변화가 또렷하게 인식되었다. 한번 그렇게 경험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도 그 찰나와 영원성(하나님) 그리고 그 한 점에서의 시공간의 변화는 여전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 모두 지금 이 순간의 영원한 한 점에서 변화를 일으킨다. 이 한 점이 없다면 세상도 없다.

이 순간에 경험되는 이 영원의 한 점이 바로 본성이며 성령이며 하나님이다. 세상은 하나님 안에서 그렇게 변화를 일으키며 생동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지속되면서 하나님도 영원성으로 자각된다.

'우물이 나귀를 본다'는 표현도 그렇다. 누구나 깨어나기만 하면 우물이 나귀를 본다는 말이 실감된다. 나도 이전부터 실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힘이 약하다보니 맑은 거울이 아니었다. 회광반조를 하면서 공부를 하지만 아직 공부가 덜 되다보니 그 비유가 경험적으로 확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제에서야 그 비유가 선명하게 경험되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거울을 본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수행을 하는 사람도 거울을 열심히 닦으며 깨끗하게 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깨닫고 나면 거울이 나귀를 보는 체험을 하게 된다. 다만 얼마나 맑게 나귀를 보느냐가 문제이다. 거울이 깨끗하면 나귀도 선명하게 보인다. 그것은 거울을 닦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의 때만 완전하게 없애버리면 거울은 저절로 깨끗해진다. 깨달은 지 얼마되지 않거나 공부가 깊지 못한 사람은 거울이 깨끗하지 못한 상태에 머문다. 나도 아직 공부가 깊지 못해서 그런 상태였다. 그런데 어제 제대로 맑은 거울의 상태에서 나귀를 보는 체험을 했다. 공부가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이다. 

거울은 변하지 않는 영원의 상태이다. 그 영원의 공간 안에서 세상의 다양한 변화가 발생한다. 나는 영원의 거울이 되어 그 안에서 눈앞의 세상이 순간순간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