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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마지막날

밤 11시 30분. 이제 30분이 지나면 2023년은 끝난다. 연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늘 지금 이 시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 아직은 나도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어쩌랴! 그냥 있는 그대로 산다.

며칠 기분이 우울했다. 이선균씨 죽음이 영향을 많이 차지했다. 정치적 암담함도 한몫했다. 가능한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살지만 워낙 윤과 그 일당들이 일을 저질러서 그 소란에서 완전하게 벗어날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암울함을 걱정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냥 그들의 못된 소행이 너무 괘심해서 속앓이를 조금 하고 있을 뿐이다.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속 시원하게 풀리지 않아서 답답했던 것도 있다. 하여튼 며칠 기분이 많이 가라앉았고 지금도 그러하다. 오후 늦게 맨발걷기 하로 갔는데 매일 두 시간 걸었으나 오늘은 한 시간만 걷고 돌아왔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걷기가 싫어졌다.

며칠 전부터 피아노 연습을 다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서 건반 연습하는 건 아니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좀 했다. 화성학 공부도 좀 했다. 모드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재미있었다. 지금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오래 연습할 수가 없다. 대신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다가 쉴 때, 유튜브 볼 때 작은 건반으로 코드와 스케일 연습을 할 생각이다. 어제 49 건반 미디 키보드도 하나 주문했다. 내일 도착 예정이다. 짜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나름 연습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사실 지금은 피아노 연습할 때가 아닌데 연습을 하다보니 쉬는 날이 많았다. 그래도 이미 해두었던 연습은 나중에 다시 해도 기억이 나서 손해는 아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 연습할 때는 내가 이사를 간 후부터이다. 그 전에는 가장 우선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틈틈히 짬을 내어서 기본 연습을 해두면 절대 손해는 아니다. 어차피 나중에 본격적으로 연습한다고 하더라도 코드와 스케일은 건너뛸 수가 없는 과정이다. 매일 한두 시간씩 연습해도 최소 2년 이상 연습해야 하는 코스이다. 그러니 몇 년 동안 조금씩이라도 미리 연습해두면 나한테는 좋은 것이다.

깨달음 공부는 또 다시 평행선을 지나고 있다. 한차례 성장이 있으면 얼마 동안 성장 없이 평평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실 성장 없는 게 아니라 없는 것 처럼 보인다. 이런 과정이 늘 반복된다. 하지만 인내하면서 계속 공부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날 또 한 차례 더 깊어지는 체험을 한다. 그 과정이 짧으면 몇 달, 길면 몇 년이 걸린다. 그렇게 십 수년 공부해야 자아가 제대로 떨어져 나간다. 그 전에는 공부가 힘이 없어서 자기 자신에게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사람들이 깨달음에 환상을 가질 때에는 기대심리가 클 것이다. 말만 들어도 깨달음은 참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깨달음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없다. 세상은 세상대로 돌아가고 바뀌는 것도 없다. 가끔 신비체험을 하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 동안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사라지고 예전 그대로의 삶 속으로 떨어진다. 깨닫고 나서도 자아가 완전히 떨어져나가지 않으면 단지 본성을 알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힘을 받지 못한다. 그런 상태로 산다면 깨달음은 그냥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그 정도에서 끝내려면 차라리 깨달음 공부를 하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는 깨달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과대포장 하지도 않고 실망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체험하고 산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것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 관련 책에 등장하는 내용에 속으면 안 된다. 책에는 마치 성스러운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기술한다. 하지만 깨달음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 우리 삶이 책 내용과 같던가? 아니다. 삶은 아주 적나라하다. 깨달음도 그런 삶과 분리되지 않는다.

깨달음 공부는 깨닫고 나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때에라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 전에는 깨달음도 깨닫기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쓸 데가 없다. 그렇다고 전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깨닫게 되면 일단 진리는 알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실체도 알게 되고, 자기 자신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전부이다. 근본 바탕을 알게 되지만 그 앎을 떠나서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깨닫지 못한 사람과의 차이는 그 앎이 있느냐 없느냐 차이 밖에 없는 것이다. 깨달아도 여전히 세상 근심걱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정도의 앎으로는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으로 설명하면 이제 한 알의 밀알이 밭에 떨어져서 싹을 틔우고 고개를 쳐든 정도이다. 그것이 자라서 수많은 밀알을 열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깨달음은 언제든지 중간에 도태될 수 있다. 내가 겪어보니 실제로 그렇다. 그리고 몽지 심성일 선생의 말을 들어봐도 똑같은 말을 한다.

아! 이제 막 자정을 지났다. 2024년 1월 1일이다.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