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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세상은 의미가 없다

깨달음 공부를 하다보니 개념은 재미가 없다. 이 공부의 큰 부작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생각을 하기 싫어진다는 것이다. 생각을 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몸이 답답해진다. 생각은 사람을 기본 좋게 만들기도 하지만 불행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다. 깨달음 공부를 하면 생각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생각이 삶에 고통을 가져다주는데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서 안정적인 삶을 살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의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하지만 역작용도 만만치 않다.

나도 깨달음 공부를 해보니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점점 싫어진다. 그냥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느끼면 편하다. 내가 본 것을 생각하고 의미를 찾고 기억을 더듬는 행위는 너무 힘겹다. 시간이 지나면 배운 것도 다 잊어버리는데 그걸 다시 떠올려서 개념 정립을 해야하는게 여간 고충이 아니다.

본래 세상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모든 의미는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예를들면 하나의 머리 크기만한 돌이 있다고 하자. 길에서 흔히 보이는 돌에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 돌이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면 갑자기 의미가 발생한다. 혹은 고대에 누군가 조형물을 만들었는데 그 일부라는 것이 밝혀지면 의미가 발생한다. 그냥 돌에 사람의 흔적이 있을 뿐인데 의미가 생기고 역사가 만들어지고 개념이 입혀지는 것이다. 돌은 돌이다. 의미를 입히지 않으면 그냥 돌이고, 의미를 입히면 갑자기 귀한 보물이 된다.

미술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한다. 마르셜 뒤상의 <샘>이라는 작품이 있다. 공장에서 만든 남성용 변기에 작가가 사인을 하고 전시에 출품했다. 그가 한 것은 변기를 미술 시장에 내놓았다는 것 외에 다른 인위적인 작업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변기는 위대한 예술품이 되었다. 그 변기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기 외에 다른 변기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한다. 아무리 겉으로 똑같아도 그 변기여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후로 현대미술은 모두 작품에 개념을 입히지 않으면 작품의 가치를 지닐 수 없게 되었다. 작가는 작품을 만들면서 철학을 입혀야 하고 감상자 또한 작품을 보면서 의미를 생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밋밋하게 작품을 보면 작품은 그냥 물질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이 참 피곤하다. 의미 생성의 원리와 과정을 공부해야 하고 대상을 마주하면서 의미를 되새겨야 하니 정신이 참 피곤해진다. 있는 그대로 보면서 저절로 감흥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의미에서 미술은 중세나 르네상스 혹은 고전주의 작품 감상이 덜 피곤하다. 그나마 세계를 모방하려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굳이 많은 해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 형태의 균형을 통해서 미(美)를 표현하는 작품은 미술 지식 없이 작품을 보기만 해도 어느 정도 감흥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론적인 지식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감흥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런 지식이 없이도 그림 자체에서 오는 아우라를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으니 그 만큼 생각의 영역이 줄어든다.

인생에 의미가 있는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느라 많은 수고를 한다.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그가 찾을 수 있는 의미는 스스로 생성하던지 아니면 사회나 시대가 만든 의미를 선택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왜냐하면 본래 삶에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의미가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살아지는 것이다. 살다보니 의미를 만들게 되고 그 의미를 수용하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없으면 어떻게 사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도 속박받지 않고 사는 삶이 진짜 자유로운 삶이다.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해서 죽는 사람도 있으나 그 사람은 '의미 없음'의 의미를 갖고 죽는 것이다. 그것마저 내려놓으면 진짜 해방을 맛본다.

하나님의 뜻(의미)이 있는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 참 많은 수고를 한다. 이 나라를 위해서, 자신이 속한 단체를 위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 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진실은 아무런 뜻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잘 살펴보라. 하나같이 성경에 기록된 내용, 어떤 사람의 명언, 믿을 만한 사람의 조언, 어떤 상황에 잘 맞는 결과, 자기 희망, 신비한 현상, 여러 사람의 생각 혹은 자기 생각이 전부이다. 굳이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면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현상황이 하나님의 뜻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금 이 순간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굳이 별개의 하나님의 뜻은 없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하나님 뜻 같은 건 없다. 매순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뜻은 성취되고 있다. 그런데 무슨 다른 뜻이 또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짠 하고 나타나서 이것이 내 뜻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그런 건 없다. 그런데 그렇게 나타나거나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분명 가짜 하나님이니 더더욱 하나님의 뜻은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거나 혹은 특별한 하나님의 뜻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