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삶의노트 > 삶의노트

과학(3) 교육(3) 글모음(59) 깨달음(358) 생각(439) 시사(104) 여행(97) 역사(1) 영성(282) 영화  (7) 예술·미술(35) 일상·삶(503) 종교(571) 철학(5)

자기 안에 있는 수많은 자아들

"언니도 이런 경험이 있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과 아주 달라진 것을 발견하는 일이? 갑자기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글쓰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달라진 경험이 있어? 다른 사람은 보아도 모르지만 우리 자신은 잘 알고 있는 변화인 것이야. 우리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또 전연 다르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돼. 우리는 변신할 수 있고 자기 자신과 유희할 수 있어. 책을 읽었을 때 우리는 책 속에 있는 이 사람 또는 저 사람과 같다는 것을 알게 돼. 그리고 다음 책을 읽었을 때는 또 다른 모습과 같은 걸 알게 돼. 이렇게 끝없이 계속되곤 해. 사람은 몸을 굽히고 자기 자신 속을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나를 볼 수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도 참 자기가 아니야. 아마 그 수백 개를 다 합치면 정말 자기일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적어도 믿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는 이 수많은 자기 중에서 다만 하나만, 미리 정해진 특정의 하나만을 택할 수 있을 뿐이야."

- 《생의 한가운데》, p76, 루이제 린저 지음, 전혜린 옮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찾아서 헤맨다. 책 속으로, 영화 속으로,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저 먼 타국으로 떠돈다. 때로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 내면을 들여다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방황하는 사람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은 사람은 없다. 보통은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의 말처럼 수많은 자기 중에서 가장 자기답다고 생각하는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선택된 자기도 지속적이지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래서일까, 자기를 찾는 일은 죽을 때까지 가슴에 한으로 맺혀 살 때가 많다.

진정한 자기 자신은 이 수많은 자기들의 이면에 있다. 우리가 보통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자기 자신이 아니다. 태어나 살면서 주변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양한 인격들의 집합인 것이다. 그것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환멸을 느낄 뿐이다. 그것들 바탕에 불변하는 자신이 있다. 그것을 찾는 사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시인과 촌장의 노래 〈가시나무〉 첫 소절이 생각난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나는 이 노래를 조성모가 불러서 알게 되었다. 거짓 자아는 이렇게 쉼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참된 자아를 찾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신 것처럼 충분한 쉼을 얻게 된다. 

유튜브에 책 읽어주는 채널이 많다. 어제 오늘 누워서 《생의 한가운데》를 듣는데 저 구절이 들려왔다. 참 공감되는 말이었다. 마침 전혜린이 번역한 책을 갖고 있어서 그 단락을 찾아서 이렇게 옮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