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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감

페이스북에서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여류 화가의 글을 읽었다. 곧 전시를 마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란다. 벌써 31번째 개인전을 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 걸까?' 혼잣말로 여러 번 되내이기도 했단다.

"벌써 31번째 개인전이 아니던가? 전시가 끝나면 밀려오는 허탈+허무감은 이제 익숙할 만한데….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그녀의 눈물은 전시가 끝나고 밀려오는 허무감 때문이었다. 어느 젊고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공연을 할 때까지는 몰랐는데 공연을 마치고 나면 어찌나 허무감이 크게 밀려오는지 그때마다 힘들다고 한다. 일반인들도 다르지 않다. 시험을 치르고 합격한 후에 오는 공허감, 어떤 계획을 실행하고 나서 오는 허무감, 그렇게도 기다렸던 여행을 마친 후에 오는 허무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의 허무감이 있다.

목표한 것을 이루면 충만감이 채워져야 함에도 인간은 결코 충만감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새로운 목표를 세워서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그 목표를 준비하고 한단계 한단계 다가갈 때에는 또 다른 충만감이 채워지는 듯하지만 막상 그 목표를 성취하게 되면 또 다시 허무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런 일은 죽을 때까지 반복된다.

기독교인이라고 다르지 않다. 교회 일을 하든지 선교를 하든지 간에 그것을 하는 동안에는 보람도 느끼고 좋지만 제아무리 그것에 충실해도 마음의 공허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찾아서 열정을 쏟아내게 된다. 해외 선교를 하는 사람은 계속 선교를 하게 되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은 계속 교회를 세운다. 마치 그것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처럼 포장해서. 실은 자기 안의 불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그렇게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음인데 말이다. 그들은 평생 일에서 쉬지를 못한다. 마음 속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해야 자신이 살아있는 것 같고, 존재감이 느껴지고, 하나님이나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공허한 메아리가 된다. 평생을 그렇게 헐떡이다가 죽을 때에서야 더 이상 기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쉬게 된다.

나도 이런저런 일로 그런 공허감을 참 많이 느꼈다. 평상시 예배를 드릴 때에는 잘 몰랐다. 하지만 특별한 성가대 찬양 예배나 음악선교단 찬양 집회 등 특별 기획된 이벤트를 진행했을 때, 그것을 다 마치고 나서 집으로 향할 때에는 그렇게도 마음이 공허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집회이고 내가 그 집회의 일원으로 참여했는데 왜 그런 공허감이 생길까? 돌이켜보면 내가 그 행사에 신경을 많이 쓰면 쓸수록 그 후의 공허감도 깊어졌던 것 같다. 그것은 분명 자아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아가 강해질수록 그 후유증도 크다. 공연이나 전시를 할 때, 어떤 목표를 이루었을 때 자아는 끝없이 높아간다. 하지만 그런 행사가 끝나면 더 이상 높아질 이유가 사라지고 그때부터 불충분으로 떨어진다. 그렇다고 어떤 이벤트를 365일 계속 할 수도 없다. 사람이 끝없이 각성되면 살아날 수가 없다.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갑자기 죽는 이유가 그럴 것이다. 그리고 각성 상태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추락할 때의 그 허무감은 무시무시하다. 연예인이 마약을 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어떤 것을 하더라도 허무감을 갖지 않으려면 함(doing)이 없이 해야 한다. 내가 한다는 의식이 있는 한 높이 올라간 만큼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함이 없이 하는 사람은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에 떨어질 일도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은 늘 평화롭다. 함이 없이 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겸손하고 쉼을 가진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