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삶의노트 > 삶의노트

과학(3) 교육(3) 글모음(59) 깨달음(358) 생각(438) 시사(104) 여행(97) 역사(1) 영성(281) 영화  (7) 예술·미술(35) 일상·삶(502) 종교(571) 철학(5)

마음의 본체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내가 화초들 사이의 풀을 뽑다가 "천지 사이에서 어찌하여 선을 북돋워주기 어렵고 악은 제거하기가 어렵습니까?"라고 여쭈니, 선생(왕수인)께서는 "북돋워 주지도 제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이 일에서 볼 때 선악은 모두 사람의 기준에서 판단한 것이므로 잘못이 생길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해하지를 못했다. 그러자 선생께서는 "천지간의 생명력은 꽃이나 풀이나 마찬가지이다. 어찌 선악의 구분이 있겠는가? 그대가 꽃을 관상하고자 하면 꽃을 선으로 여기고 풀을 악으로 여기며, 풀을 쓰고자 하면 다시 풀을 선으로 여긴다. 이런 선악은 모두 그대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에서 생겼으니 이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입니까"라고 여쭈니, 선생께서는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은 리(理)의 고요함이고 선도 있고 악도 있는 것은 기(氣)의 움직임이다. 기에 의해 동요되지 않으면 선도 없고 악도 없으니 이를 지선(至善)이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내가 "불가에서도 역시 '무선무악'을 말하는데 어떻게 다릅니까?" 라고 여쭈어 보니, 선생께서는 "불가에서는 '무선무악'에 집착하여 일체를 모두 돌보지 않으므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성인의 '무선무악'은 단지 '좋아하는 것도 만들지 않고 싫어하는 것도 만들지 않는' 태도일 뿐이니 기에 의해 동요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선왕(先王)의 도를 따름으로써 표준을 가질 수 있으므로' 자연히 한결같이 천리를 따라 '천지를 도와 만물을 완성하는' 공을 이루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풀이 악이 아니라면 풀을 제거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라고 물으니, 선생께서는 "이와 같은 발상이 바로 불가나 도가의 생각이다. 풀이 만약 장애가 된다면 네가 제거해 버리는 데 무슨 거리낄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내가 "그렇다면 그 역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여쭈어 보자, 선생께서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지각이 없는 사람이다. '만들지 않는다'라는 말은 좋아하고 싫어함이 한결같이 리를 따르고 조금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풀을 뽑는 것이 어째서 한결같이 리를 따르고 조금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까?"라고 여쭈어 보니, 선생께서는 "풀이 나한테 방해가 되고 이치로 볼 때도 뽑아야 한다면 뽑아 낼 뿐이다. 우연히 아직 뽑지 못했다고 해도 역시 마음에 누(累)가 되지는 않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을 두게 되면 심체에 바로 누가 있게 되고 온갖 기에 의한 움직여지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호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라는 것이 어찌 마음(意)이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여쭈니, 선생께서는 "그건 성의(誠意)이지 사의(私意)가 아니다. '성의'는 단지 천리를 따르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비록 천리를 따른다해도 마음을 조금이라도 두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좋아하는 바가 있으면 그 올바른 상태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더없이 크고 공정해야만 마음으 본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알면 미발(未發)의 중(中)을 알게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 《전습록》
- 《양명철학》p.363~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