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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 여섯에 카미노를 걷다》

주문했던 산티아고 순례길 책 6권이 어제 도착했다. 이 책들을 읽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뜬다. 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꽂혔을까? 아마도 걷는 기쁨, 하나님과 동행하는 완전한 충족감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깨달음은 걷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깊은 산중이나 골방에 틀어앉아 명상을 하겠지만, 나는 걸으면서 깨달음의 길에 들어섰다. 갑천을 걷고, 유성천을 걷고, 갑천을 따라 이어지는 월평공원 습지길을 걸었다. 그 한걸음 한걸음 속에 나의 명상이 있었고, 깨어남이 있었고, 근원으로의 순례가 있었다. 때문에 걷는 것은 나에게는 기쁨과 행복 그 자체였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나에게는 순수한 의식의 여행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찾거나 나 자신을 찾기 위함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종교적 이유나 철학적 동기를 갖고 떠나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의도로 산티아고를 찾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지만, 나는 이미 하나님도 찾았고, 나 자신도 찾았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찾을 게 없다. 이미 찾은 그 존재로서 순례길을 체험하려는 것이다. 국내 여행을 하려는 것도 그 이유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는 것도 그 이유이다. 즉 참된 자신으로서의 세상은 어떤 것인지 보고 듣고 느끼면서 체험하고 싶은 것이다.

며칠 동안 읽고 있던 켈링의 책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는 또 뒤로 물려야 할 것 같다. 사실 여행기는 외국인이 쓴 것 보다는 같은 한국인이 쓴 글이 더 재미있다. 아마도 문화적인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예순 여섯에 카미노를 걷다》는 160페이지 정도로 얇다. 두 시간 정도 읽었는데 벌써 절반 넘게 읽었다. 그럼에도 잘 읽혀진다. 저자 나이 66세이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네 명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았다. 동료들은 '솔봉 엄마'라는 59세의 여인, 은행장을 지낸 63세의 '윤 선생', 68세의 이 장로라고 불리는 분이다. 책의 절반을 읽는 동안 큰 사고없이 여행을 잘 하고 있다.

내가 장년층의 순례길 책을 종종 읽는데, 아마도 나도 그들의 나이가 되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20~30대에는 나도 여행을 많이 했다. 그래서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지만, 그 후로 건강이 좋지 못해서 지금까지 해외는 단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 심지어 국내도 돌아다니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건강을 챙겨서 죽기 전에 국내외를 가능한 많이 여행할 생각을 갖고 있다. 세상도 많이 변했고, 나도 젊을 때의 몸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 많은 사람들의 여행기는 많은 힘이 된다. 내가 어떤 준비를 해야 여행에 어려움 없이 잘 이겨낼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순 여섯에 카미노를 걷다》는 여행의 소소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다만 여행에 필요한 여러 준비 사항과 대처법은 나름대로 잘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오래된 책이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참고삼아 최신의 정보로 잘 활용해야 한다.

산티아고 여행기를 읽다보니 2008년을 기점으로 책이 와르르 쏟아져 나온 것 같다. 지금까지 구입한 책들 중에서 2008년에 여행한 후 그것을 토대로 여행기를 쓴 책이 상당히 많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 시점부터 국내에 인기를 끌기 시작한 듯하다. 통계를 봐서도 2006년에는 84명, 2007년에는 449명, 2008년에는 915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온다. 2012년에는 2,493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국가별 통계로는 우리나라가 11위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찾았다. 저자는 2008년 4월에 산티아고를 방문했다. 통계를 근거로 유추해보면 2006년까지는 그나마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그 당시 여행한 사람들의 책이 소개되면서 2007년부터 여행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방문한 사람들이 또 여행기를 쓰면서 많은 책들이 2008년에 쏟아져 나온 것 같다. 몇 달 전에 읽은 여행 작가 김남희씨의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 2》도 2006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야기이다. 그 책도 붐을 일으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씨도 2006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와서 아이디어를 얻어 올레길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인 박건삼씨가 부르고스를 지날 때 스페인의 영웅 엘 시드(El Cid) 얘기를 한다. 갑자기 엘 시드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유튜브 검색을 하니 마침 영화가 올라와 있다. 잠시 책은 덮어두고 이제 영화를 봐야겠다. ^^